1961년 5·16 군사쿠데타를 통해 권력을 장악한 박정희 독재정권은 자신의 권력을 정당화하기 위해 경제성장에 집착하였고 솟구치는 민주화 운동에 대한 극심한 탄압으로 일관하였다. 저곡가 저임금 정책은 경제성장을 위한 필수 조건이었으며 유신헌법과 긴급조치는 민주화운동 세력을 압살하고 정권을 유지하기 위한 우선 수단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민주화운동은 전국적으로 그칠 줄 모르고 전개되었다. 마침내 한계에 도달한 박정희 독재정권은 1979년 10월 26일 박정희 자신의 심복인 김재규 중앙정보부장의 총탄에 의해 막을 내리게 되었다. 그러나 박정희 정권 때부터 군부내에서 자신의 세력을 규합해 온 전두환을 주축으로 한 신군부 일당은 오히려 민주화 과정의 과도기를 틈타 자신들의 집권 시나리오를 준비하여 착착 진행하고 있었다. 12·12 군사반란으로 권력을 장악한 다음, 당시 분출되고 있던 전국민의 민주화 열망을 잠재우기 위해서는 민주화운동세력과 야당의 정적을 제거해야 했다. 그 제물이 광주였다. 민주화운동이 활발하게 전개되어 온 곳이며 야당의 정적 중에서 가장 많은 대중적 지지를 받고있던 김대중의 정치적 고향이 전라도 광주였던 것이다. |
전라도 광주는 70년대 박정희 개발 독재 때부터 희생양이었다. 철저히 소외되었고 경제에서는 낙후되었으며 우리 민족을 다시 동서로 가르는 지역감정의 볼모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고장은 나라와 민족의 장래를 위해서 자신의 목숨마저 내던지며 투쟁해 온 민주투사의 고장이었다. 전두환 신군부 일당의 학살만행에 맞서 한치도 물러서지 않고 시민전체가 일심동체로 저항하였던 것은 정신적 측면에서든 사회경제적 측면에서든 너무도 당연한 일이었다. 결국 피의 진압으로 5·18민중항쟁은 끝났지만 그 후 청년학생을 비롯한 양심적인 민주인사들과 민중운동에 의해 전두환 일당을 역사의 심판대에 세움으로서 항쟁의 정당성은 온 천하에 입증되기에 이르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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